장식과 탐미의 변증법 – 한국의 현대장신구 이야기

1.
장신구는 인체에 착용하는 작은 조형물이다. 브로치, 목걸이, 귀걸이, 반지, 팔찌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과 동행한 친숙한 사물이자 미술품으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인체와나 화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존재했다.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권력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기능하는가 하면, 종교적 의례와 언약의 표식이 되기도 했다. 한편 귀금속이나 보석 같은 값비싼 희귀재로 만든 장신구는 화폐의 역할을 담당했고 부의 축적수단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여성성을 강조하며(혹은 강제하며)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상업주의의 산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양한 차원의 역할은 이 작고 섬세한 사물 속에 축적된 의미와 상징의 풍부함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장신구(주1), 혹은 예술장신구라는 이름의 장신구가 기존의 가치 위에 새로운 의미를 보태며 우리 시대의 문화적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2.
20세기 중반부터 장신구는 작가의 창작활동으로 새로이 등장한다. 금, 은, 보석을 다루는 전문 기술을 가진 장인이 아닌, 미술교육을 받은 작가가 새로운 장신구 제작자가 된 것이다. 대략 1960년대 초 유럽에서 출발한 현대장신구가,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작가 개인이 주도하는 창작의 매개체가 되었으며 보다 자율적인 시각매체로 변화했다. 이후 현재까지 약 50여 년 동안, 현대장신구는 장신구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장신구 작가의 양성이 대학교육에 의해 주도된 것도 같은 시기이다. 세계 여러 곳의 수준 높은 미술대학에서 금속공예 교육의 일환으로 장신구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그럼으로써 20세기 후반의 다양하고 급진적인 미술사조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이 장신구 분야에 속속 등장했다. 이들의 새로운 장신구에 주목하고 소비하려는 고객이 생겨났으며, 장신구 전문 갤러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문을 열었다. 전문서적들과 잡지가 창간되어 현대장신구와 작가에 대한 담론이 오갔을 뿐만 아니라, 공공미술관의 콜렉션 목록에도 ‘새로운’ 장신구가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금속공예 분야에서 은기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금속기물 제작이 20세기 이래 공산품과 경쟁을 하며 생활사물의 세계를 내어주는 난감한 상황에서, 동시대의 미학적 담론을 껴안은 새로운 장신구는 금속공예 분야를 채워주는 대표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새로운 장신구의 탐미주의적 경향은 몸을 모태로 한 장식성과 장인적 세공기술에 천착하던 그동안의 경향과 공존하거나 혹은 상호 대립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장신구 운동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었고 약 30년의 차이를 두고 한국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3.
한국의 현대장신구는 대략 198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공예의 역사는 1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 깊지만, 그 전통과 현대장신구와의 연관성은 미약하다. 20세기 전반의 식민지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한국의 현대미술이 성립되는 1960, 70년대를 지난 후 공예분야에서도 동시대적 미감와 감성을 중시하는 현대공예가 도자, 나무, 섬유, 금속 등 각 매체별 분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금속공예의 하위 장르로 존속했던 장신구 분야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당시까지 장신구라면 귀금속과 보석으로 치장된 예물 부류를 떠올리던 한국사회에 새로운 장신구가 등장했다. 장신구작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동안 주로 순수미술을 취급하던 갤러리에서 장신구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현대장신구는 주로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금속공예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들은 대개 금속공예와 장신구 작업을 병행했고, 한국의 주요 대학에서 두 가지를 함께 교육했다. 1980년대 초에 귀국해 활동을 시작한 김승희, 유리지(이상 미국), 이승원, 주예경(이상 독일), 우진순(스웨덴)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미 활동하고 있던 선배, 동년배 금속공예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매개한 해외로부터의 영향은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주2)
국제 교류도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 2년 동안 미국의 금속공예가 잭 다 실바Jack da Silva가, 1983년부터 6년 동안 영국의 장신구작가 스티븐 보트Stephen Bort가 한국에서 강의했다. 1986년 워커힐미술관에서는 미국의 장신구작가 57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의 현대장신구전이 있었으며, 같은 해에 개최된 국제 워크숍에서는 미국의 주요 금속공예가와 장신구작가들이 방문해 4일에 걸쳐 각종 기법을 시범을 보여, 새로운 기법들에 목말랐던 한국의 많은 작가와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82년 이후 한국에 수차례 교환교수로 체류한 것을 포함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몽고메리대학 교수 김홍자도 미국의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한국에 소개하고 양국의 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해외유학도 계속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미국 유학이 가장 많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 독일, 영국 등으로 다양해졌으며, 더불어 이들 국가와의 교류도 확대되었다.
4.
1990년대부터 한국의 장신구 교육은 보다 전문화되었고, 독립적인 하나의 영역으로 부상했다.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겸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장신구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교육한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장신구 전문작가의 첫 세대라 할 수 있는 김정후, 이정규, 이명주, 이광선, 이동춘, 강연미 등이 여기에 속한다.(주3) 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서구의 현대장신구 세계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금속공예 분야의 교육에서 장신구는 금속기물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후 다수의 장신구작가가 배출된다.
교육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제작기법과 재료에 관한 부분이다. 이것이 이후 한국 현대장신구의 전반적인 특징을 규정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우선 제작기법의 경우, 다양한 기법의 소개와 이를 숙련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다. 기법의 출처는 다양했다. 첫째, 1980년대 이후 1세대의 금속공예가에 의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이식된 금속공예기법들이다. 이들 초기의 유학세대는 그들이 익힌 기술을 교육했고, 여러 기술서적을 참고했다. 영어권과 일본의 서적이 주를 이루었고, 이를 참고한 한국 저자들의 서적도 1990년을 전후해 출판되었다.(주4)
둘째, 한국의 전통공예에서도 기법이 이어졌다. 한국의 장신구 역사는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 깊다. 비록 현대장신구와의 연관은 미약하지만 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수자들에 의해 계승된 전통 공예기술이 현대의 장신구작가들에게 전수, 활용되었다. 입사, 금부, 옻칠 등의 기술이 한국 현대장신구로 계승된 대표적인 전통공예 기법이다.
셋째, 세공업계의 제작기술도 연결되었다. 현대장신구 성립 이전, 20세기 중반에 산업의 한 분야로 정착한 ‘상업장신구’ 분야에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금, 은 등의 귀금속과 보석을 다루는 세공기술 중의 일부가 대학 교육에 스며들어 혼합되었다. 또한 1세대 금속공예가들이 작품 제작을 위해 조수로 고용했던 세공업계 출신의 장인들이 세공기술을 대학의 교육내용에 전했다.(주5)
제작기법을 강조한 교육의 결과는 한국 현대장신구 작가들이 무엇보다도 ‘잘 만든’ 장신구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간혹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한국 작가들이 가진, 재료를 장악하고 완결하는 손기술은 세계시장에서 한국 장신구의 최고의 장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5.
2000년 이후 한국 현대장신구의 가장 뚜렷한 경향은 재료적 확장이다. 앞에서 언급한 기술교육의 전문성이 한국의 교육적 전통이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장신구의 재료적 변화는 다분히 국제적 경향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과감하게 시도한 비금속재료의 사용은, 한국에서 2000년대부터 유사한 방식으로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장신구 작가들은 남이 사용하지 않는 자신만을 재료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작가의 특징이 사용하는 재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활용은 현대장신구의 외연을 확대하는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동시대적인 교감과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적인 정보교환과 함께 대학교육 특히 유럽의 경향을 효과적으로 접목한 교수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독일에서 공부한 이동춘이 2003년부터 시도한 장신구교육은 동시대의 유럽의 장신구교육을 한국에 적용한 것으로, 재료에 대한 연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재료의 확장은 한국 장신구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실리콘, 플라스틱, 종이, 펠트, 합성수지, 섬유, 가죽 등 거의 무한한 재료들이 장신구의 몸으로 드러났다.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국내외 무대에서 주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혜림, 정호연, 박정혜, 김수연, 문춘선, 권슬기, 강미나, 김용주, 이요재, 이예지, 배준민 등이 이와 같은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재료의 확장과 관련하여 이동춘이 기획한 몇 차례의 중요한 전시회도 기록할만하다. <플라스틱, 플라스틱, 플라스틱>(2004, 2017), <물질의 신화>(2012), <나무-연장된 삶>, 2016> 등의 기획전은 금속 이외의 수많은 물질이 장신구의 재료로 흥미롭게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렸다. 재료의 확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자연스런 일이 되었으며, 금속을 주로 사용하는 기존의 작가군 위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젊은 작가들이 더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의 장신구작가들은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재료 자체의 즉물적 성질에서 시각적 힘을 추출하는 능력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전문화된 한국 현대장신구 교육은 2000년 중반 이후 다수의 장신구작가 배출로 이어져, 본격적으로 전업 장신구작가(주6)의 층이 형성된다.
6.
한국에 있는 약 200개의 4년제 대학 중에 약 50개에서 공예 관련 교육을 한다. 그 중 약 20여개의 대학에서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가르친다. 대학원까지 마친 금속공예와 장신구분야의 작가들이 매년 100명 가까이 배출되며 이들 중 적어도 반수 이상이 장신구 작가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최근 공예관련 학과들이 통폐합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전공자의 수는 외국에 비해 여전히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현대장신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장소는 매우 제한적이다. 장신구작가 오미화가 운영하는 서울의 갤러리 오는 한국과 외국작가들의 선별된 현대장신구를 상설로 판매하는 드문 곳이다. 서울 근교에서 장신구작가 이정규가 운영하는 갤러리 바움도 장신구전문 갤러리로서 간헐적인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밖에 갤러리와 숍을 함께 운영하는 크래프트 아원, 갤러리 소연, 스페이스 두루, 산울림 아트앤크래프트 등이 다른 공예품과 현대장신구를 함께 판매한다.
2000년에 설립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은 취약한 공예 분야의 인프라를 보충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공예페어를 매년 개최하는 동시에 한국의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여러 사업을 진행해 큰 성과를 만들었다. 다수의 장신구작가가 선발되어 세계적 수준의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현지의 고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현대장신구의 수준을 제고하고 작품활동을 고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장신구작가들이 국제적인 행사에 참가하거나 수상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2012년 강미나가 1등 수상을 한 독일의 BKV공모전을 비롯하며 국제적인 공모전의 수상자 명단에는 한국작가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적인 네트웍을 가진 미국의 ‘아트 주얼리 포럼Art Jewelry Forum’ 이 전 세계 장신구 작가를 대상으로 매년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AJF Prize가 2013년과 2014년 연속해서 한국의 김수연, 권슬기에게 돌아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16년에 제정된 로에베 공예상의 최종후보에 한국의 장신구작가 김계옥, 고희승이 선정된 것도 커다란 성과다. 2020년 올해에는 1세대 장신구분야의 거장인 프리드리히 베커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어 독일세공가협회가 3년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프리드리히 베커 상Friedrich Becker Prize에 16개국 151명의 작가 중 한국의 정준원이 최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잡지 『메탈스미스Metalsmith』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한국의 장신구에 관한 기사가 실리는 등, 세계가 한국 장신구작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주7)
2013년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대규모의 현대장신구 전시회를 개최했다. 44명의 한국 현대장신구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현대장신구를 보다 폭넓은 관객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주8)
7.
한국의 현대장신구는 공예 분야 중에서도 가장 늦게 출발해 가장 급격한 변화와 성과를 보여준 분야다. 1세대 교육자들에서 시작된 활발한 국제 교류, 풍부한 인적자원과 집약적인 교육, 2000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전업 장신구작가들의 치열한 활동이 축적되어 만든 결과다. 특히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우수한 작가를 포함한 작가군이 형성된 것과 국제적으로 큰 평가를 받은 것은 한국의 현대공예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현대장신구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그들보다 앞서 유럽에서 진행된 현대장신구 운동을 따라, 보다 개별적이고 미학적인 관심사를 표현하는 데에 매진해 왔다. 인체나 의상에 착용하고 장식하는 사물로서의 기능적 조건이나 시각적 조화보다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과 물성의 표현, 그리고 크기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에 치중했다. 이 노력의 결과인 오늘의 현대장신구는 긍정적인 평가만큼 의문도 따른다. 장신구의 예술적 표현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킴으로써 ‘장식’이라는 보조적, 부가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보다 독립된 예술품으로 격상시켰다는 호평만큼, 장신구의 역사가 축적한 전래의 가치와 조화로움에서 멀어졌다. 현대 개념미술의 아류로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생긴다.
장식과 미적 탐구라는 장신구가 갖는 본연의 양면성은 현대장신구의 묘미이다. 장신구의 기능적, 기술적 종속성은 한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장신구로 만들어주는 차별화된 정체성이다. 이를 족쇄로 여기고 탈피하고자 했던 유럽의 급진적 현대장신구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도, 어느 덧 몸에서 멀어진 장신구는 결과적으로 어느 위치에도 자리매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규정해야 할 장신구의 성격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현대장신구작가들은 새로운 장신구를 수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고객층을 확보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국제적인 활동과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속한 사회 속에서 적절히 소비되지 못하는 창작행위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 한국의 작가들이 이제 미학적 논의와는 다른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이를 각자의 작업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이다. 장신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와 눈높이를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전통을 이어오며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온 현대장신구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분야이다. 정교한 작품 속에 구현된 작가의 정신세계와 물질에 대한 장인적 탐구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흥미진진한 세계를 구축했던 한국의 현대장신구 작가들이 그들 앞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국내외의 많은 이들에게 지속적인 호응을 받기를 바란다.
전용일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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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에 발간한 이동춘 저.『한국현대장신구연대기- 100개의 브로치』의 서문으로 작성된 것이다.
주1. 현대장신구는 contemporary jewelry를 옮긴 말이다. 대체로 1960년대 이후의 개인작가들의 장신구를 뜻한다. 예술장신구art jewelry 라는 용어도 이와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주2. 한국에서는 이들 이전에 현대 금속공예의 첫 세대라고 할수 있는 신권희, 장윤우, 강찬균, 최현칠 등이 금속공예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다음 세대에 시작되는 장신구교육의 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유학한 이들과 같은 세대의 작가로 홍정실, 김여옥, 김재영, 홍경희 등이 장신구 교육에 공헌했다.
주3. 이 밖에도 첫 세대의 장신구작가로 교육에 기여했던 이들로 장미연, 서진환, 조유진, 이정임, 안승태 등이 있다.
주4. 곽순화의 『귀족적 품위의 금속공예』(한림출판사, 1985), 전용일의 『금속공예기법』(디자인하우스, 1994, 미술문화, 2003 재간행), 김경아, 이정임의 『공예가를 위한 귀금속공예기법』(주얼리우먼, 1999) 등이 있다.
주5. 1세대 금속공예가들 중 일부는 세공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이름이 드러나거나 기록되지 않은 이들은 대체로 세공업계 출신의 최고수준의 장인들로 이들의 기술이 그들을 고용했던 공예가 혹은 함께 일했던 그들의 제자들을 통해 대학교육에 이식되었다.
주6. 창작활동을 주 수입원으로 삼아 활동하는 직업적인 장신구작가들. 영어로는 studio jeweler 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주7. 한국 현대장신구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의 고조로 필자는 최근 다음 세 곳의 국제규모 행사에 초청받아 한국의 현대장신구를 소개하는 강의를 했다. 독일 뮌헨 피나코텍뮤지엄, 2017; 중국 상해 동지대학교, 2018: 덴마크 코펜하겐 룬데타른 홀, 2019.
주8. <장식과 환영Ornamentation and Illusion>, 2013.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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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일은 금속공예가로 1990년부터 국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7회의 개인전과 100여회의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저서로 ‘금속공예기법’, ‘디자인공예대사전(공저)’이 있으며 국내외 공예 이슈와 작가들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현대장신구전 ‘장식과 환영’을 기획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현대장신구에 관한 초청 강의를 뮌헨 피나코텍뮤지엄(2017), 상해 동지대학교(2018), 코펜하겐 룬데타른홀(2019)에서 진행했다.
장식과 탐미의 변증법 – 한국의 현대장신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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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는 인체에 착용하는 작은 조형물이다. 브로치, 목걸이, 귀걸이, 반지, 팔찌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과 동행한 친숙한 사물이자 미술품으로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인체와나 화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존재했다.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권력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기능하는가 하면, 종교적 의례와 언약의 표식이 되기도 했다. 한편 귀금속이나 보석 같은 값비싼 희귀재로 만든 장신구는 화폐의 역할을 담당했고 부의 축적수단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여성성을 강조하며(혹은 강제하며)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상업주의의 산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양한 차원의 역할은 이 작고 섬세한 사물 속에 축적된 의미와 상징의 풍부함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장신구(주1), 혹은 예술장신구라는 이름의 장신구가 기존의 가치 위에 새로운 의미를 보태며 우리 시대의 문화적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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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부터 장신구는 작가의 창작활동으로 새로이 등장한다. 금, 은, 보석을 다루는 전문 기술을 가진 장인이 아닌, 미술교육을 받은 작가가 새로운 장신구 제작자가 된 것이다. 대략 1960년대 초 유럽에서 출발한 현대장신구가,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작가 개인이 주도하는 창작의 매개체가 되었으며 보다 자율적인 시각매체로 변화했다. 이후 현재까지 약 50여 년 동안, 현대장신구는 장신구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장신구 작가의 양성이 대학교육에 의해 주도된 것도 같은 시기이다. 세계 여러 곳의 수준 높은 미술대학에서 금속공예 교육의 일환으로 장신구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그럼으로써 20세기 후반의 다양하고 급진적인 미술사조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이 장신구 분야에 속속 등장했다. 이들의 새로운 장신구에 주목하고 소비하려는 고객이 생겨났으며, 장신구 전문 갤러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문을 열었다. 전문서적들과 잡지가 창간되어 현대장신구와 작가에 대한 담론이 오갔을 뿐만 아니라, 공공미술관의 콜렉션 목록에도 ‘새로운’ 장신구가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금속공예 분야에서 은기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금속기물 제작이 20세기 이래 공산품과 경쟁을 하며 생활사물의 세계를 내어주는 난감한 상황에서, 동시대의 미학적 담론을 껴안은 새로운 장신구는 금속공예 분야를 채워주는 대표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새로운 장신구의 탐미주의적 경향은 몸을 모태로 한 장식성과 장인적 세공기술에 천착하던 그동안의 경향과 공존하거나 혹은 상호 대립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장신구 운동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었고 약 30년의 차이를 두고 한국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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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장신구는 대략 1980년대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공예의 역사는 15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 깊지만, 그 전통과 현대장신구와의 연관성은 미약하다. 20세기 전반의 식민지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한국의 현대미술이 성립되는 1960, 70년대를 지난 후 공예분야에서도 동시대적 미감와 감성을 중시하는 현대공예가 도자, 나무, 섬유, 금속 등 각 매체별 분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금속공예의 하위 장르로 존속했던 장신구 분야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당시까지 장신구라면 귀금속과 보석으로 치장된 예물 부류를 떠올리던 한국사회에 새로운 장신구가 등장했다. 장신구작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동안 주로 순수미술을 취급하던 갤러리에서 장신구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현대장신구는 주로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금속공예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들은 대개 금속공예와 장신구 작업을 병행했고, 한국의 주요 대학에서 두 가지를 함께 교육했다. 1980년대 초에 귀국해 활동을 시작한 김승희, 유리지(이상 미국), 이승원, 주예경(이상 독일), 우진순(스웨덴)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미 활동하고 있던 선배, 동년배 금속공예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매개한 해외로부터의 영향은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주2)
국제 교류도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 2년 동안 미국의 금속공예가 잭 다 실바Jack da Silva가, 1983년부터 6년 동안 영국의 장신구작가 스티븐 보트Stephen Bort가 한국에서 강의했다. 1986년 워커힐미술관에서는 미국의 장신구작가 57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의 현대장신구전이 있었으며, 같은 해에 개최된 국제 워크숍에서는 미국의 주요 금속공예가와 장신구작가들이 방문해 4일에 걸쳐 각종 기법을 시범을 보여, 새로운 기법들에 목말랐던 한국의 많은 작가와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82년 이후 한국에 수차례 교환교수로 체류한 것을 포함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몽고메리대학 교수 김홍자도 미국의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한국에 소개하고 양국의 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해외유학도 계속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미국 유학이 가장 많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 독일, 영국 등으로 다양해졌으며, 더불어 이들 국가와의 교류도 확대되었다.
4.
1990년대부터 한국의 장신구 교육은 보다 전문화되었고, 독립적인 하나의 영역으로 부상했다.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겸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장신구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교육한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장신구 전문작가의 첫 세대라 할 수 있는 김정후, 이정규, 이명주, 이광선, 이동춘, 강연미 등이 여기에 속한다.(주3) 197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서구의 현대장신구 세계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금속공예 분야의 교육에서 장신구는 금속기물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후 다수의 장신구작가가 배출된다.
교육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제작기법과 재료에 관한 부분이다. 이것이 이후 한국 현대장신구의 전반적인 특징을 규정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우선 제작기법의 경우, 다양한 기법의 소개와 이를 숙련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다. 기법의 출처는 다양했다. 첫째, 1980년대 이후 1세대의 금속공예가에 의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이식된 금속공예기법들이다. 이들 초기의 유학세대는 그들이 익힌 기술을 교육했고, 여러 기술서적을 참고했다. 영어권과 일본의 서적이 주를 이루었고, 이를 참고한 한국 저자들의 서적도 1990년을 전후해 출판되었다.(주4)
둘째, 한국의 전통공예에서도 기법이 이어졌다. 한국의 장신구 역사는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 깊다. 비록 현대장신구와의 연관은 미약하지만 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수자들에 의해 계승된 전통 공예기술이 현대의 장신구작가들에게 전수, 활용되었다. 입사, 금부, 옻칠 등의 기술이 한국 현대장신구로 계승된 대표적인 전통공예 기법이다.
셋째, 세공업계의 제작기술도 연결되었다. 현대장신구 성립 이전, 20세기 중반에 산업의 한 분야로 정착한 ‘상업장신구’ 분야에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금, 은 등의 귀금속과 보석을 다루는 세공기술 중의 일부가 대학 교육에 스며들어 혼합되었다. 또한 1세대 금속공예가들이 작품 제작을 위해 조수로 고용했던 세공업계 출신의 장인들이 세공기술을 대학의 교육내용에 전했다.(주5)
제작기법을 강조한 교육의 결과는 한국 현대장신구 작가들이 무엇보다도 ‘잘 만든’ 장신구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간혹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한국 작가들이 가진, 재료를 장악하고 완결하는 손기술은 세계시장에서 한국 장신구의 최고의 장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5.
2000년 이후 한국 현대장신구의 가장 뚜렷한 경향은 재료적 확장이다. 앞에서 언급한 기술교육의 전문성이 한국의 교육적 전통이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장신구의 재료적 변화는 다분히 국제적 경향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과감하게 시도한 비금속재료의 사용은, 한국에서 2000년대부터 유사한 방식으로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장신구 작가들은 남이 사용하지 않는 자신만을 재료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작가의 특징이 사용하는 재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활용은 현대장신구의 외연을 확대하는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동시대적인 교감과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적인 정보교환과 함께 대학교육 특히 유럽의 경향을 효과적으로 접목한 교수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독일에서 공부한 이동춘이 2003년부터 시도한 장신구교육은 동시대의 유럽의 장신구교육을 한국에 적용한 것으로, 재료에 대한 연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재료의 확장은 한국 장신구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실리콘, 플라스틱, 종이, 펠트, 합성수지, 섬유, 가죽 등 거의 무한한 재료들이 장신구의 몸으로 드러났다.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국내외 무대에서 주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혜림, 정호연, 박정혜, 김수연, 문춘선, 권슬기, 강미나, 김용주, 이요재, 이예지, 배준민 등이 이와 같은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재료의 확장과 관련하여 이동춘이 기획한 몇 차례의 중요한 전시회도 기록할만하다. <플라스틱, 플라스틱, 플라스틱>(2004, 2017), <물질의 신화>(2012), <나무-연장된 삶>, 2016> 등의 기획전은 금속 이외의 수많은 물질이 장신구의 재료로 흥미롭게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렸다. 재료의 확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자연스런 일이 되었으며, 금속을 주로 사용하는 기존의 작가군 위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젊은 작가들이 더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의 장신구작가들은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재료 자체의 즉물적 성질에서 시각적 힘을 추출하는 능력을 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전문화된 한국 현대장신구 교육은 2000년 중반 이후 다수의 장신구작가 배출로 이어져, 본격적으로 전업 장신구작가(주6)의 층이 형성된다.
6.
한국에 있는 약 200개의 4년제 대학 중에 약 50개에서 공예 관련 교육을 한다. 그 중 약 20여개의 대학에서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가르친다. 대학원까지 마친 금속공예와 장신구분야의 작가들이 매년 100명 가까이 배출되며 이들 중 적어도 반수 이상이 장신구 작가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최근 공예관련 학과들이 통폐합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전공자의 수는 외국에 비해 여전히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현대장신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장소는 매우 제한적이다. 장신구작가 오미화가 운영하는 서울의 갤러리 오는 한국과 외국작가들의 선별된 현대장신구를 상설로 판매하는 드문 곳이다. 서울 근교에서 장신구작가 이정규가 운영하는 갤러리 바움도 장신구전문 갤러리로서 간헐적인 기획전을 개최한다. 이밖에 갤러리와 숍을 함께 운영하는 크래프트 아원, 갤러리 소연, 스페이스 두루, 산울림 아트앤크래프트 등이 다른 공예품과 현대장신구를 함께 판매한다.
2000년에 설립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은 취약한 공예 분야의 인프라를 보충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공예페어를 매년 개최하는 동시에 한국의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여러 사업을 진행해 큰 성과를 만들었다. 다수의 장신구작가가 선발되어 세계적 수준의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현지의 고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현대장신구의 수준을 제고하고 작품활동을 고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장신구작가들이 국제적인 행사에 참가하거나 수상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2012년 강미나가 1등 수상을 한 독일의 BKV공모전을 비롯하며 국제적인 공모전의 수상자 명단에는 한국작가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적인 네트웍을 가진 미국의 ‘아트 주얼리 포럼Art Jewelry Forum’ 이 전 세계 장신구 작가를 대상으로 매년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AJF Prize가 2013년과 2014년 연속해서 한국의 김수연, 권슬기에게 돌아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16년에 제정된 로에베 공예상의 최종후보에 한국의 장신구작가 김계옥, 고희승이 선정된 것도 커다란 성과다. 2020년 올해에는 1세대 장신구분야의 거장인 프리드리히 베커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어 독일세공가협회가 3년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프리드리히 베커 상Friedrich Becker Prize에 16개국 151명의 작가 중 한국의 정준원이 최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국제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잡지 『메탈스미스Metalsmith』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한국의 장신구에 관한 기사가 실리는 등, 세계가 한국 장신구작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주7)
2013년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대규모의 현대장신구 전시회를 개최했다. 44명의 한국 현대장신구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현대장신구를 보다 폭넓은 관객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주8)
7.
한국의 현대장신구는 공예 분야 중에서도 가장 늦게 출발해 가장 급격한 변화와 성과를 보여준 분야다. 1세대 교육자들에서 시작된 활발한 국제 교류, 풍부한 인적자원과 집약적인 교육, 2000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전업 장신구작가들의 치열한 활동이 축적되어 만든 결과다. 특히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우수한 작가를 포함한 작가군이 형성된 것과 국제적으로 큰 평가를 받은 것은 한국의 현대공예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현대장신구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의 작가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그들보다 앞서 유럽에서 진행된 현대장신구 운동을 따라, 보다 개별적이고 미학적인 관심사를 표현하는 데에 매진해 왔다. 인체나 의상에 착용하고 장식하는 사물로서의 기능적 조건이나 시각적 조화보다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과 물성의 표현, 그리고 크기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에 치중했다. 이 노력의 결과인 오늘의 현대장신구는 긍정적인 평가만큼 의문도 따른다. 장신구의 예술적 표현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킴으로써 ‘장식’이라는 보조적, 부가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보다 독립된 예술품으로 격상시켰다는 호평만큼, 장신구의 역사가 축적한 전래의 가치와 조화로움에서 멀어졌다. 현대 개념미술의 아류로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생긴다.
장식과 미적 탐구라는 장신구가 갖는 본연의 양면성은 현대장신구의 묘미이다. 장신구의 기능적, 기술적 종속성은 한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장신구로 만들어주는 차별화된 정체성이다. 이를 족쇄로 여기고 탈피하고자 했던 유럽의 급진적 현대장신구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도, 어느 덧 몸에서 멀어진 장신구는 결과적으로 어느 위치에도 자리매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규정해야 할 장신구의 성격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현대장신구작가들은 새로운 장신구를 수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고객층을 확보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국제적인 활동과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속한 사회 속에서 적절히 소비되지 못하는 창작행위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 없다. 한국의 작가들이 이제 미학적 논의와는 다른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이를 각자의 작업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이다. 장신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와 눈높이를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전통을 이어오며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온 현대장신구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분야이다. 정교한 작품 속에 구현된 작가의 정신세계와 물질에 대한 장인적 탐구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미적 체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흥미진진한 세계를 구축했던 한국의 현대장신구 작가들이 그들 앞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국내외의 많은 이들에게 지속적인 호응을 받기를 바란다.
전용일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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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0년에 발간한 이동춘 저.『한국현대장신구연대기- 100개의 브로치』의 서문으로 작성된 것이다.
주1. 현대장신구는 contemporary jewelry를 옮긴 말이다. 대체로 1960년대 이후의 개인작가들의 장신구를 뜻한다. 예술장신구art jewelry 라는 용어도 이와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주2. 한국에서는 이들 이전에 현대 금속공예의 첫 세대라고 할수 있는 신권희, 장윤우, 강찬균, 최현칠 등이 금속공예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다음 세대에 시작되는 장신구교육의 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유학한 이들과 같은 세대의 작가로 홍정실, 김여옥, 김재영, 홍경희 등이 장신구 교육에 공헌했다.
주3. 이 밖에도 첫 세대의 장신구작가로 교육에 기여했던 이들로 장미연, 서진환, 조유진, 이정임, 안승태 등이 있다.
주4. 곽순화의 『귀족적 품위의 금속공예』(한림출판사, 1985), 전용일의 『금속공예기법』(디자인하우스, 1994, 미술문화, 2003 재간행), 김경아, 이정임의 『공예가를 위한 귀금속공예기법』(주얼리우먼, 1999) 등이 있다.
주5. 1세대 금속공예가들 중 일부는 세공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이름이 드러나거나 기록되지 않은 이들은 대체로 세공업계 출신의 최고수준의 장인들로 이들의 기술이 그들을 고용했던 공예가 혹은 함께 일했던 그들의 제자들을 통해 대학교육에 이식되었다.
주6. 창작활동을 주 수입원으로 삼아 활동하는 직업적인 장신구작가들. 영어로는 studio jeweler 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주7. 한국 현대장신구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의 고조로 필자는 최근 다음 세 곳의 국제규모 행사에 초청받아 한국의 현대장신구를 소개하는 강의를 했다. 독일 뮌헨 피나코텍뮤지엄, 2017; 중국 상해 동지대학교, 2018: 덴마크 코펜하겐 룬데타른 홀, 2019.
주8. <장식과 환영Ornamentation and Illusion>, 2013.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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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일은 금속공예가로 1990년부터 국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7회의 개인전과 100여회의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저서로 ‘금속공예기법’, ‘디자인공예대사전(공저)’이 있으며 국내외 공예 이슈와 작가들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현대장신구전 ‘장식과 환영’을 기획했으며, 최근에는 한국의 현대장신구에 관한 초청 강의를 뮌헨 피나코텍뮤지엄(2017), 상해 동지대학교(2018), 코펜하겐 룬데타른홀(2019)에서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