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공예의 원형 / 허보윤

…. 내가 말하는 그릇이란 식탁 위의 식기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드시 담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까지 모두 그릇이다. 형태도 색도 각양각색이다. 납작한 접시형에서부터 주둥이가 좁고 엉덩이가 펑퍼짐한 주병형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가지 모양의 그릇이 세상에 존재한다.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쓰임새도 다종다양,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릇은 하나같이, 손을 모아 조심스레 시냇물을 담아 마시는 마음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인류 최초의 그릇이라 하면 석기시대 토기가 떠오르지만, 실상 그 이전에 나무 그릇이나 나무열매 그릇이 있었고, 더 이전에 손그릇 혹은 땅그릇(땅을 파서 담는다)이 있었을 것이다. 반쯤 오므린 손처럼, 그릇은 무언가 담을 수 있도록 오목하고, 꼭 붙인 손가락처럼 새지 않는 바닥이 있다. 그릇의 오목한 안 공간은 무언가가 담기길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 안에 물도 담고, 술도 담고, 음식도 담고, 꽃도 담는다. 담긴 것들은 빙 둘러 있는 바닥과 벽 덕분에 소중해진다. 그릇 안에 담긴 것은 그릇 밖 어느 것과도 다르다. 안팎의 구별은 안이 소중하다고 말하기 위한 노력이다. 결국 그릇은 소중한 내용을 담기 위한 형식이자, 내용을 귀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다. 그렇다면 아무 데나 담을 수 없지 않은가.

좋은 그릇은 어떤 것일까. 하나, 좋은 그릇은 우선 아름답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 뭐가 더 아름다운지 길게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릇은 기이하거나 기발하거나 기괴한 형상이 아니다. 둘, 좋은 그릇은 기분 좋은 촉감을 가졌다. 손이, 수저가, 입술이 닿은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감촉은 몸의 일부가 접촉해야만 느껴지고, 손이 닿는 거리에서만 발생한다. 저 멀리 두고 바라만 보는 일로 그릇을 알 수 없다. 셋, 좋은 그릇은 평안하면서도 특별하다. 일상에 녹아들면서도 가만히 눈길을 끈다. 한눈에 “와~” 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느리고 조용한 감동을 담고 있다.

그릇에 관해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그릇이 바로 공예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공예 안에서 그릇은 기능이자 상징이다. 실용적 기능이 있건 없건 그릇의 형상을 한 공예품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대 일찍이 새로운 도자 예술을 추구한 추상표현주의 도예가들의 출발점도 그릇이었다. 그들은 그릇의 형상을 만들되 실용적 기능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전통을 제거했다. 좋은 그릇과 좋은 공예품은 상통한다. 눈에 아름답고, 손에 기분 좋고, 마음에 편안하면서 특별한 사물이 공예품이다. 기원하듯 손을 모아 오므려 물을 담고 소중하게 마셨듯이, 안에 담긴 것 혹은 위에 놓인 것을 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공예품이다. 일상 사물이, 주변이 공예품이라면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하게 대접할 줄 아는 것이다.

  • 사진의 그릇은 1991년 대학원 시절,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가 원형을 만들고 필자가 캐스팅해 만든 것이다. 결코 좋은 그릇은 아니나 그릇의 기원을 보여준다.( ‘공예+디자인’ 31호)

글/ 허보윤. 현대공예 이론, 서울대 교수

그릇, 공예의 원형 / 허보윤

…. 내가 말하는 그릇이란 식탁 위의 식기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드시 담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까지 모두 그릇이다. 형태도 색도 각양각색이다. 납작한 접시형에서부터 주둥이가 좁고 엉덩이가 펑퍼짐한 주병형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가지 모양의 그릇이 세상에 존재한다.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쓰임새도 다종다양,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릇은 하나같이, 손을 모아 조심스레 시냇물을 담아 마시는 마음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인류 최초의 그릇이라 하면 석기시대 토기가 떠오르지만, 실상 그 이전에 나무 그릇이나 나무열매 그릇이 있었고, 더 이전에 손그릇 혹은 땅그릇(땅을 파서 담는다)이 있었을 것이다. 반쯤 오므린 손처럼, 그릇은 무언가 담을 수 있도록 오목하고, 꼭 붙인 손가락처럼 새지 않는 바닥이 있다. 그릇의 오목한 안 공간은 무언가가 담기길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 안에 물도 담고, 술도 담고, 음식도 담고, 꽃도 담는다. 담긴 것들은 빙 둘러 있는 바닥과 벽 덕분에 소중해진다. 그릇 안에 담긴 것은 그릇 밖 어느 것과도 다르다. 안팎의 구별은 안이 소중하다고 말하기 위한 노력이다. 결국 그릇은 소중한 내용을 담기 위한 형식이자, 내용을 귀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다. 그렇다면 아무 데나 담을 수 없지 않은가.

좋은 그릇은 어떤 것일까. 하나, 좋은 그릇은 우선 아름답다.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 뭐가 더 아름다운지 길게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릇은 기이하거나 기발하거나 기괴한 형상이 아니다. 둘, 좋은 그릇은 기분 좋은 촉감을 가졌다. 손이, 수저가, 입술이 닿은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감촉은 몸의 일부가 접촉해야만 느껴지고, 손이 닿는 거리에서만 발생한다. 저 멀리 두고 바라만 보는 일로 그릇을 알 수 없다. 셋, 좋은 그릇은 평안하면서도 특별하다. 일상에 녹아들면서도 가만히 눈길을 끈다. 한눈에 “와~” 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느리고 조용한 감동을 담고 있다.

그릇에 관해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그릇이 바로 공예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공예 안에서 그릇은 기능이자 상징이다. 실용적 기능이 있건 없건 그릇의 형상을 한 공예품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대 일찍이 새로운 도자 예술을 추구한 추상표현주의 도예가들의 출발점도 그릇이었다. 그들은 그릇의 형상을 만들되 실용적 기능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전통을 제거했다. 좋은 그릇과 좋은 공예품은 상통한다. 눈에 아름답고, 손에 기분 좋고, 마음에 편안하면서 특별한 사물이 공예품이다. 기원하듯 손을 모아 오므려 물을 담고 소중하게 마셨듯이, 안에 담긴 것 혹은 위에 놓인 것을 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공예품이다. 일상 사물이, 주변이 공예품이라면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하게 대접할 줄 아는 것이다.

  • 사진의 그릇은 1991년 대학원 시절,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가 원형을 만들고 필자가 캐스팅해 만든 것이다. 결코 좋은 그릇은 아니나 그릇의 기원을 보여준다.( ‘공예+디자인’ 31호)

글/ 허보윤. 현대공예 이론,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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